위령성월 (황금궁전Pr. 971차,
위령기도는 인류공동체 연대성의 표현
교회는 11월을 위령성월로 정해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 특히 연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드리고 희생을 바친다. 위령성월을 맞아 그 유래와 의의를 함께 살펴본다. <편집자>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언제부터〓죽은 이를 위한 기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구약성서의 마카베오 후서다. 기원전 163년 유대 민족의 지도자인 마카베오는 전쟁터에서 죽은 유대인들을 위해 장사 지내면서 그들이 지은 죄가 용서될 수 있도록 애원하고 기도와 헌금을 바쳤다.
“경건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갸륵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Ⅱ마카 12, 45)
기원후 2세기부터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신자들 사이에 보급되었으며 특히 이 관습은 로마의 카타콤바(지하묘지)안에 새겨진 많은 기도문 즉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아 천상 행복에 들게 해달라는 내용에 뚜렷이 들어있다.
교회는 이 같은 기도의 관행을 ‘연옥’이라는 교리를 통해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다. 지상에서 자신의 죄를 완전히 보속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죄를 깨끗이 씻는 상태 혹은 장소라는 뜻을 지닌 연옥은 13세기 리용 공의회, 15세기 피렌체공의회,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신경을 거쳐 1545년에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교회의 공식 가르침으로 선포되었다.
또 609년 교황 성 보니파시오 4세는 매년 11월1일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정해 교회력에 축일이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까지 기념했다. 그 후 998년에 프랑스 클뤼니 수도원의 오딜로 원장이 모든 성일 대축일 다음날인 11월2일을 ‘위령의 날’로 정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도록 했고, 이런 관습이 보편화되어 11월을 위령성월로 지내게 됐다.
▲연옥과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죽음 이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내세를 천국과 연옥 그리고 지옥으로 구분하고 있다. 천국은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충만한 기쁨의 상태를 말하며 연옥은 죄를 지은 영혼이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모르며 정화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반면에 지옥이란 하느님을 철저히 거부한 영혼이 절망의 나락 속에서 헤매는 상태를 뜻한다.
현세의 교회는 연옥에서 단련 받고 있는 영혼들의 교회와 천국에서 지복을 누리는 성인들의 교회와 함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룬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 사람이 스스로 사면을 받을 수 없어 형벌을 마치고 출옥의 날만 기다리는 것처럼 육체를 벗어난 연옥영혼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하고 연옥에서 빨리 벗어날 희망만을 지니고 있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와 희생은 바로 이런 영혼들이 하루 빨리 연옥의 고통에서 벗어나 천국에 들 수 있도록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간구하는 것이다. 또 우리와 마찬가지로 천국의 성인들도 이들 연옥영혼들을 위해 기도한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인간이 사랑으로 서로 돕는 것을 기꺼워하시기 때문에 서로 공을 통할 수 있도록 섭리하시고(성인들의 통공) 우리와 성인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따라서 모든 이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기도는 또한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이들에 대한 우리 살아있는 이들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 죽은 이들을 위해 바치는 기도는 어떤 의미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죄인이며 타인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도 연옥에 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셈이다. 우리가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천국에 갔을 때 우리의 기도와 희생을 잊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을 빌어 줄 것이다.
▲신앙인의 자세〓교회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며 죽음과 영생을 묵상하는 11월에 교회가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 드리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거기에는 하느님 나라의 영광에 죽은 이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함께 들어가고자 하는 교회공동체의 염원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에는 그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이들, 다시 말해 죽은 이들을 위한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 이 기도는 또한 우리가 우리자신만의 구원이 아니라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일깨우고 있다. 따라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산 이와 죽은 이를 포함한 인류공동체의 연대성을 드러내는 한 모습이며 사랑의 표현이다.
위령성월에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우리자신의 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자연히 하느님 나라에 대해 묵상하게 되고 따라서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여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사참례도 가장 효과적인 기도의 하나다.
위령성월을 맞아 우리는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에 깊은 사랑으로 참여해야겠다.
[평화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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