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레지오 훈화

우리들이 반드시 버려야 할 것들

黎峰 2012. 3. 20. 23:07

우리들이 반드시 버려야 할 것들

-        미움과 원망 부정적인 생각, 세속적인 이득만을 추구하는 욕심

(황금궁전Pr. 989, 2012.03.20)

 

이상하게도 남에게 섭섭했던 일은 좀처럼 잊혀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했던 서운한 말과 행동으로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게 서운하게 행한 것도 있지만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분명히 고마웠던 일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섭섭했던 일이 기억나면 고마웠던 일은 슬그머니 잊혀 진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내가 남에게 베풀었던 일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지만, 남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었던 일은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면 어떨까요? ,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감사할 일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기억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은 쉽게 잊어버린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자유로워지지 않을까요? 우리의 인생을 결코 길다고 할 수 없을 텐데, 미움과 원망만을 간직하며 살기에는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지 않을까요?

2,000
년 전, 예수님을 반대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바리사이, 율법학자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있었지요. 그들의 반대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쓴 소리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지도자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 그것도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반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라면서 엘리야와 엘리사 예언자에 대한 말씀을 하시지요.

예수님의 편에 서서 예수님을 지지해야 할 고향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욕심과 이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고향 사람인 예수님을 통해서 세속적인 이득만을 원했던 것이지요. 사실 예수님께서 이제까지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그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마술을 보고 신기해하며 좋아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보기보다는 순간의 쾌락을 그리고 자신들에게 돌아올 세속적인 이득만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고향 사람들을 향해 하느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을까요? 당연히 예수님은 침묵 하실 수밖에 없었고, 고향에서는 기적을 행하지 않는 예수님에 대해 미움과 원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잘못하신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동에 서운했고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큰 은총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예수님과 가장 먼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움과 원망 부정적인 생각, 세속적인 이득만을 추구하는 욕심 등은 우리들이 반드시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이것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주님이 보여 주신 사랑의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빠다킹 신부와 함께  조명연마태오 신부님 --